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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물든 알프스…범인은 ‘온실가스 포식’한 미세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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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물든 알프스…범인은 ‘온실가스 포식’한 미세조류

이정호 기자
프랑스 지역에 있는 알프스 고원의 하얀 눈이 붉게 물들어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가 눈을 붉게 만드는 미세조류 증식을 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대 제공

프랑스 지역에 있는 알프스 고원의 하얀 눈이 붉게 물들어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가 눈을 붉게 만드는 미세조류 증식을 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대 제공

흐린 하늘과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흰 구름, 멀리 펼쳐진 검은색 바위가 담아낸 신비로운 풍경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는다. 프랑스에 속한 알프스 고원지대인 사진 속 장소는 관광시설이 들어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멋진 모습을 뽐낸다. 그런데 눈 색깔이 예사롭지 않다. 빨간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여기저기에 다홍빛이 감돈다. 한 남성이 손으로 눈을 깊게 파자 지표면에서 족히 10㎝는 될 법한 깊이까지 붉은 물이 든 현상이 관찰된다.

■ 붉은 미세조류의 습격

이산화탄소를 먹고 자란 녹조류…‘카로티노이드 색소’가
자외선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어무기가 된 셈

선혈이 낭자한 현장 같은 이 모습은 사람이나 동물이 만든 사건·사고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대 연구진 등이 지난주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플랜트 사이언스’를 통해 지목한 원인은 바로 ‘미세조류’이다. 미세조류는 현미경으로 관찰해야만 형태가 확인되는 수십㎛(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생물이다. 식물처럼 뿌리나 잎은 없지만 광합성을 한다. 주로 물에서 사는데, 이런 미세조류가 뜬금없이 눈 위에서 확산한 것이다.

과학계에선 눈에서 나타난 이런 색상 변화 현상을 ‘빙하의 피(Glacier blood)’라고 부른다. 이런 일이 최근 지속적으로 관찰되자 프랑스 연구진은 알프스산맥의 고도 1250m부터 2940m까지 지표 158곳을 선정해 샘플을 뽑아냈다. 연구를 이끈 에릭 마르샬 그르노블 알프스대 교수는 “사람들은 바다에 미세조류가 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잘 안다”면서 “하지만 산 정상의 토양과 눈 속에 이런 미생물이 산다는 데 대해선 생소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 이산화탄소 먹고 ‘증식’

알프스에서 미세조류가 번성한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조류는 기본적으로 꾸준한 햇빛과 함께 풍부한 이산화탄소가 주어지면 성장을 잘하게 돼 있다.

실제로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달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9ppm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봉쇄와 산업활동 위축에도 이산화탄소 농도에는 쉽사리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인간 생존에 ‘악조건’인 이산화탄소 증가가 알프스 눈 속의 미세조류에는 ‘호조건’이 된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 눈은 빨갛게 변했을까. 알프스 눈에서 발견된 미세조류는 사실 엽록소를 갖고 있는 녹조류다. 부영양화가 일어나거나 유속이 느린 하천에서 관찰되는 이른바 ‘녹조라떼’처럼 녹색으로 보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붉은빛을 띠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엽록소 외에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가 미세조류에 다량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근을 불그스름하게 만드는 성분이다. 연구진은 카로티노이드가 강렬한 햇빛, 특히 자외선에서 미세조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빙하의 피’는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미세조류의 방어 무기였던 것이다.

■ 기후변화 부채질 우려

‘붉은 물감’이 번져갈수록 눈은 점점 빨리 녹을 것
기후변화를 부채질할 ‘난데없는 습격’에 대해 정밀분석이 필요해졌다

문제는 붉게 변한 눈이 ‘이채로운 볼거리’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알베도(albedo) 효과’ 때문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은 흰색에서 가장 많이,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적게 반사된다. 여름에 되도록 흰옷을 입어야 시원한 이유다. 하얀 눈이 쌓인 북극 해빙의 경우 햇빛의 90%를 반사하고, 검푸른 바다는 6%를 반사하는 데 그친다.

연구진은 알프스에서도 붉은색을 띤 눈이 넓어질수록 더 많은 햇빛이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검은색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한 흰색 눈보다는 더 많은 햇빛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영국 리즈대 연구진 등이 북극에서 일어난 비슷한 현상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붉은색 눈은 흰 눈보다 알베도를 13% 낮췄다. 알베도가 감소하면 지표면 온도가 높아지고 눈이 녹는 속도도 빨라진다.

결과적으로 ‘빙하의 피’는 이산화탄소 증가라는 기후변화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기후변화를 추가로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산속 생태계에서 미세조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며 “미세조류의 분포와 움직임에 대처할 지침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environment/climate/article/202106132126035?utm_source=msn&utm_medium=related_news#csidx84a65c58d5ae677b519d331a7de3871 onebyone.gif?action_id=84a65c58d5ae677b519d331a7de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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