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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노숙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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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노숙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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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 사회가 '노숙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 노숙인 된 전직 언론인…사연을 들어보니

얼마 전 서울역 부근에 위치한 노숙인 무료 진료소를 취재차 방문했습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노숙인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약 처방을 무료로 해주고 있었습니다. 오전 시간이지만 꽤 많은 노숙인이 찾아와 진료를 받고 약을 타갔습니다. 노숙인 가운데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한 분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기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분이 전직 신문기자였기 때문입니다. A씨가 신분을 먼저 밝히지는 않았지만, 전직이 뭐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도 자네처럼 언론에 몸 담았었네.”




올해 60살의 A씨는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신문사의 기자였습니다. 공중파 방송의 전직 사장과도 친분이 있다는 A씨는 말투도 점잖고 행동도 남루한 모습과 다르게 공손했습니다. 노숙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A씨는 언론인을 그만두고 작은 사업을 하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부도를 맞았습니다. 결국 많은 빚을 지고 가족과 등지고 산 지 10년, A씨가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집을 나왔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만 겁니다.

● 노숙인이 왜 됐을까? 이유를 물어보니…

노숙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실패한 사람, 최하층의 빈민, 도시 이미지를 해치는 부랑자 등 부정적인 면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노숙인 중 상당수는 이혼과 가족해체를 경험하고 IMF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파산 등 경제위기를 딛고 일어서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복지부가 올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처음으로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를 벌인 결과 노숙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개인적 부적응’이라고 답한 비율이 53.3%로 가장 높았습니다. 개인적 부적응이란 이혼 및 가족해체, 배우자 사망, 가정폭력, 알코올/게임 중독, 질병 및 장애(정신질환) 등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 결핍(빈곤)으로 응답자의 32.9%에 달했습니다. 경제적 결핍이란 실직이나 사업실패, 신용불량, 파산, 임대료 연체, 주거 상실 등을 일컫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서비스(지지망) 부족’이라고 답한 비율도 6.3%로 조사됐는데, 교도소 출감이나 주변의 사람들의 도움 부재, 사회복지시설 퇴소, 기초생활보장 수급 중지, 복지서비스 정보 부재 등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결국 노숙인의 86% 정도는 불행한 가정사를 포함한 개인 문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재기 불능으로 노숙인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 노숙인 건강상태 매우 심각…알코올 의존에 우울증 비율 높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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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건강상태 또한 매우 심각할 정도로 나빴습니다.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노숙인의 건상상태를 체크해보니 고혈압, 당뇨 등 대사성 질환 유병률이 18.7%, 정신질환 18.6%, 치과질환 17.1% 순으로 높았습니다. 특히 전체 노숙인 중 음주자가 약 40%나 됐는데, 이 가운데 매일 술을 마시는 경우도 음주자의 18.5%로 나타났습니다. 알코올 의존성 평가에서는 음주 횟수와 음주량에 따른 문제의 음주자가 열에 일곱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짐작은 갔지만 노숙인의 알코올 의존성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겁니다. 우울증을 앓는 비율도 매우 높았는데 시설에서 보호받는 노숙인의 우울 유병률은 27.7%인 반면, 거리 노숙인 69%, 쪽방에 임시 기거하는 노숙인은 무려 82.6%에 달했습니다. 시름을 잊기 위해 술에 의지하고 결국 술에 중독돼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겁니다.

이번 첫 실태조사에서는 여성 노숙인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이 심각한 걸로 나왔습니다. 노숙 생활 중 성추행, 성폭행 피해경험 비율은 여성이 7.2%로 남성 0.5%보다 매우 높았습니다. 구타와 가혹행위 경험도 여성이 10.7%로 남성 7.3%보다 높았습니다. 여성 노숙인이 성추행, 성폭력, 가혹행위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입증된 겁니다. 여성 노숙인의 피해에 대한 안전 확보가 매우 절실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복지부도 인정했습니다.

● "'노숙인' 아픔 보듬는 지원 시스템 갖워야 선진국"

우리 사회가 노숙인에게 냉담하고 매정한 것만은 아닙니다. 노숙인이 원하면 시설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무료로 진료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일자리를 알선해주거나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기도 합니다. 이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건 경제적 지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정서적 지원을 매우 절실해하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노숙인의 정신건강을 상담해온 김헌수 명지병원 정신과전문의는 우리 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낙오한 사회 구원성을 건강하게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시스템이 약하다고 지적합니다.

가족해체로 연락이 단절되고 또는 본인이 가족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가족을 버리고 도움을 받을 아무런 개인적 연고가 없을 때 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술이나 극단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다시 가족을 구성할 용기를 갖게 하고 자존감을 회복해서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거나 가족이 없는 경우 이들을 보듬고 가족역할을 맡아 줄 정서적 지원 시스템과 주거, 직업 등 이들이 필요로 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 필요합니다.

건설 막노동자로 일하다 오른손 팔목 인대가 끊어져 노숙인이 된 72살 B씨의 말이 생각납니다. 노숙인으로 길거리를 전전하다 서울시의 도움으로 1평 남짓한 쪽방 고시원에서 그나마 생활하게 된 B씨는 “이제 말끔한 상태로 전철을 탈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노숙인 생활을 접은 게 꿈만 갖습니다. 그런데 너무 외롭습니다. 정말 외롭습니다.” B씨의 인상, 표정은 노숙인 생활을 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화하고 다정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요? 한두 번 실패로 가족과 사회와 인연을 끊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연을 우리 사회가 들어줘야 합니다. 선진국 문턱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빈곤하지만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숙인입니다.

▶ 거리 나온 노숙인 1만1천 명…알코올 의존·우울증 심각

[송인호 기자 songs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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